조선시대 때에 사군자 중에서 국화그림을 보는 게 가장 어렵습니다. 국화는 그야말로 재능이 있어야 가능한 주제였습니다. 국화를 잘 그렸던 중국의 우창숴와 문인화가 심주의 국화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 목차
- 사군자 국화꽃의 특징과 꽃말
- 조선시대 사군자 국화 문인화가 심주, 중국의 우창숴
- 장승업의 제자 안중식(1861~1919)
1. 사군자 국화꽃의 특징과 꽃말
국화꽃은 향이 정말 진하고 사람의 마음을 울릴 정도로 좋은 향기가 난다고 합니다. 사군자 중에서도 특히 그리기 어려운 국화꽃의 특징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국화꽃의 개화시기는 9월~11월입니다. 파종시기는 5~6월입니다. 양지의 산골짜기나 산지의 북부에서 잘 자랍니다. 국화꽃의 특징은 화색이 아주 다양하고 화형도 가장 흔하게 보이는 홑꽃형, 겹꽃형, 아네모네형, 탁구공 같은 폼폰형, 가늘고 긴 거미줄 모양의 스파이더형까지 있습니다. 최근에는 실내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분화용 국화가 인기 있습니다. 비슷한 식물로는 산국 구절초 감국이 있습니다. 모양이 국화꽃 특징 와 거의 흡사합니다.
국화의 꽃말은 "왕, 불로장생, 부와 풍요"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장례식장에서 국화로 큰 대를 만들어서 두기도 합니다. 국화는 마음에 깊이 스며드는 꽃입니다. 헌화를 할 일이 생긴다면 국화로 선택합시다. 애도의 뜻이 있다면 부의금이나 제물이 있지만 헌화를 주는 것이 좋습니다. 살아있을 때 신세를 진 사람과 친하게 지내고 있던 사람들이 마지막 작별을 고할 때 국화꽃을 선물하기도 합니다.
국화꽃의 꽃말은 여러 가지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건강, 즐거움, 좋은 친구입니다. 그래서 장례식장의 꽃이 되기도 하였나 봅니다. 동양 말고도 서양에서도 인기 있는 게 국화꽃입니다.
2. 조선시대 사군자 국화 문인화가 심주, 중국의 우창숴
국화는 매화와 반대로 겨울이 오는 전조인 서리를 견디며 꽃을 피웁니다. 그래서 더 많이 사랑받았습니다. 가을에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은 국화를 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국화를 더 많이 그리지 못한 이유는 글씨 쓰는 법으로 그려내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꽃뿐만 아니라 잎사귀까지 그려야 했으니 구도 잡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문인화가 심주의 묘사력은 직업화가 못지않게 다양한 장르를 그렸습니다. 묘사를 워낙 잘해서 사실적인 국화그림을 남겼습니다. 연한 먹으로 잎을 그리고 진한먹으로 잎줄기를 묘사한 방법으로 국화를 그렸습니다. 이것이 요즘 우리가 알고 있는 동양화 국화의 그림입니다.
사실적인 묘사를 하고 나서 대략적인 그림을 그릴 때 저 세밀함이 표현됩니다. 문인화가 심주(1427~1509)는 활짝 핀 국화부터 피기직전의 국화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잎의 모양을 잘 살려서 그렸는데 사실적이지는 않아도 국화잎이라고 느낄 수 있고 특징을 잘 잡아냈습니다. 이런 묘사가 훌륭하면 사실적인 것보다 더 우수한 표현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창숴(1844~1927) 원래 넉넉한 가정에서 편안하게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서예와 전각에서 뛰어난 재주를 보였고 당시 유행하던 금석문에도 조예가 깊었습니다. 그는 북 모양의 돌에 중국의 통일국가이전의 글씨체가 있는 석고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더한 글씨체를 만들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안상수체 같은 느낌입니다. 청소년시절에 난리를 만나서 피난을 갔다 왔고 4년 뒤에 돌아오니 모든 것들이 망가져있었습니다. 아버지와 농사를 하며 전각과 서예를 가다듬었습니다.
우창숴의 국화는 붓으로 능숙하고 힘 있는 선이 유창한 리듬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리듬감은 단순히 선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구도까지 역동적으로 배치되어 있고 국화와 바위가 덩어리로 어울려서 기세가 좋습니다. 우창숴는 "달리는 곳에서는 법도를 떠날 수 없고, 정밀한 곳에서도 기백을 돌봐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구도와 기세를 살린 것은 모두 의도된 행동이었습니다. 서예도 같은 원리를 적용했습니다.
3. 장승업의 제자 안중식(1861~1919)
중국에 우창숴가 있다면 조선에는 안중식이 있었습니다. 둘이 살고 죽은 나이는 다르지만 2023년 우리가 생각해 볼 때에는 동시대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우창숴는 금석학에 우수했고, 안중식은 산수화 인물화, 화조화까지 두루 잘 그리는 직업화가였습니다. 안중식의 국화 또한 굉장히 조형적이고 안정된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양반가문에서 태어난 안중식은 청년 때에 톈진에 신식 무기를 배우러 파견됩니다. 그림솜씨로 무기 만드는 법을 그려오는 것이 그의 일 이였습니다. 그 시대 때에 드물게 해외를 많이 나간 사람입니다. 그 경험이 그의 그림의 분위기와 판을 바뀌게 하였습니다.
안중식에 대해서 찾다 보니 언제나 유명하고 영화주인공이고 한 장승업에 대해서 궁금해졌습니다. 그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역관의 집에서 지내며, 청나라의 화풍을 배워서 소화해 낸 조선후기의 화가입니다. 안중식은 그런 장승업을 흠모할 정도로 그의 그림과 세계관을 사랑했습니다. 안중식은 여러 경험을 쌓으면 임금의 초상을 그리는 최고의 화가가 되었고 여러 관직을 지내며 많은 제자를 배출했습니다.
역시 꽃을 그린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을 소유하는 게 어려운 법이죠. 국화에 대한 선조들의 사랑과 아무나 국화를 그릴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던 국화꽃의 특징까지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