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필휘지
동양화 하면 저는 바로 선이라는 단어가 생각나요. 일필휘지가 생각나죠. 일필휘지라는 단어는 한자에서 말해주듯 단숨에 힘차게 글씨를 써 내려가다.라는 뜻인데요. 붓글씨에서만 말하는 게 아니라 동양화의 먹선에서도 일필휘지를 자주 볼 수 있답니다. 혹시 동양화 하면 대충 그냥 선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생각을 하실까요. 그렇게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을 오랜 시간 동안 수련을 통해서 얻어졌다고 생각해 보시면 그림이 사뭇 다르게 보일 거예요.
정밀한 공 필
인물화나 화조화를 자세히 보면 머리카락 한오르수염한가닥까지 굉장히 세밀하고자세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표현된 것들을 보셨을 거예요. 서양화는 면으로 나누면서 선을 올릴 텐데 이런 면에서는 동양화도 굉장히 섬세함을 보일 수 있답니다. 색도 마찬가지인데요. 색이 그대로 보이는 게 아니라 붓자국이 거의 없을 정도로 부드럽게 섞여서 색을 표현한 것들도 보셨을 거예요.
문인들의 그림
문인들이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차분하고 섬세한 공필기법의 그림들이 많았는데요. 문인들이 그림을 그린 후에는 거침없는 선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 이유는 문인들이 서예를 먼저 배우기 때문입니다. 서예는 힘의 강약을 조절하면서 글씨를 쓰는데요. 한 획의 굵기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글씨를 먼저 배운 사람들의 붓으로 여러 종류의 선을 그릴 수 있고 그 표현이 그림에도 적용된 것입니다. 당나라 시대부터 송나라후반, 남송 때에 이 방식이 정착되었는데요. 이때부터 선이 자유로워지고 먹의 물기도 자연스럽게 번지는 효과를 사용하는 그림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백묘법
인물화가 시작될 즈음 선 굵기의 변화 없이 고르고 긴 선을 사용했습니다. 누에고치의 실에 비유하기도 할 정도로 얇은 선이지요. 동양화 붓으로 이런 얇은 선을 낸다는 것은 화가들의 정성과 힘이 대단히 많이 필요하죠. 화가들이 많은 수련을 한 이후에 하얀 종이배경에 검정선으로만 그림을 그린다는 뜻으로 백묘법이 유행하기 시작합니다. 당나라 때 유행을 했죠. 과거나 현재나 미술이든 음악이든 경제상황이든 유행하는 것들이 하나씩은 있었구나 생각이 드네요. 백묘법으로 그린 후에 정교하게 색을 칠하면 공필로 그린 그림이 완성됩니다. 요즘으로 생각하면 투명한 트레이싱지에 밑그림을 복사해서 가지고 다니면서 벽화에도 남길 수 있는 표현법이 되겠네요.
농중담 표현법
그림에 문인들의 힘이 더 세지면서 인물과 와 화조화에도 일필휘지의 선들이 많이 들어오게 됩니다. 가늘고 균일한 먹선에서 부드럽고 선 하나에도 농중담이 나오면서 그림의 분위기가 바뀌게 되죠. 특히 인물화에서는 복잡하고 가느다란 선 대신에 한 번에 휙휙 내려오는 먹선 표현법으로 인물의 성격 성향 느낌들을 표현할 수도 있게 됩니다. 색은 점점 덜 쓰게 되면서 이제는 완전히 먹과 물의 농중담으로만 그림을 완성합니다.
저도 오랜 시간 동안 일필휘지에 빠져있었답니다. 그만큼 노력은 적지만 한 번에 끝내고 싶어하는 마음때문이죠. 수많은 수련끝에 탄생한 일필휘지가 많이 멋져보였습니다. 하지만 인생을 일필휘지로 살아가려고 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한번에 한 획으로 힘 있게 내려간 선 과 달리 꾸준하게 갈고닦고 계속 노력하고 정진하는 단어는 어떤 게 있을지 찾아보았습니다.
- 절차탁마 - 옥이나 돌을 갈고닦아서 빛을 낸다. 부지런히 학문과 덕행을 닦음
- 우공이산 - 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뜻. 어떤 일이든 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짐
- 마부작침 -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뜻.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고 끊임없이 노력하면 이룰 수 있음
사실 일필휘지의 뜻만 봐서는 한 획에 거침없이 선을 긋는다는 것인데, 그 글이 멋진 글씨와 그림으로 되려면 무수히 많은 노력과 시간들이 들어갔지요. 일필휘지 하기 위해서는 우공이산 마부작침 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어요. 우리 인생에서도 비슷하게 느껴지는 단어들입니다. 하나를 꾸준히 한다는 것이 요즘처럼 뭐든지 빠르고 빠르게 결정 나는 시간의 흐름에서 각자만의 철학을 갖기 위해서 노력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많은 문인들이 자신의 일과 그림까지 정진했던 것을 보면 그것이 취미가 될 수도 있겠고 그 취미가 업이 될수도 있겠죠. 일필휘지 할 수 있는 그날까지 열심히 노력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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