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정보 / / 2023. 2. 4. 11:20

동양화 화조화의 채색 농담 새로운 기법 화원화가 팔대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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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원 안에서의 그림 스타일과 화원 밖에서의 그림에는 다른 변화들이 생깁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대학이나 전통적인 미대에서 인기 있는 그림과 달리 미대에 오지 않아도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이 표현하는 방식이 되겠네요. 요즘은 인터넷의 발달로 전 세계적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누구나 알 수 있지요. 특히나 그림으로는 인스타그램과 핀터레스트의 확대로 대외적인 미술형태를 빠르게 알 수 있긴 합니다. 화원에서의 화조화의 채색 농담과 새로운 기법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동양화 채색

동양화는 먹을 기본으로 하고 색채를 얇게 올리는걸로 생각하시는데, 초기에는 광물과 식물에서 얻어낸 물감으로 채색하였기에 굉장히 짙은 채색을 하였답니다

 

 

동양화 농담

먹을 갈아서 그림을 그릴때 물기를 조절하여 짙은 먹과 연한 먹 두 가지로 그립니다. 이 자연스러운 그러데이션을 먹의 농담이라고 하는데요. 짙음과 옅음을 통해서 공간감을 만들어내거나 동적인 효과를 내는 게 잘 쓰입니다. 먹의 농담은 동양화 그림의 가장 기본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화원화가 양해 ( 1150~1210?)

<가을 버드나무와 갈까마귀 한쌍> 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알고 있던 화조화의 그림 구성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보통은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한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그리는데 화가 양해의 그림은 한가운데에 버드나무가 휙 하고 올라와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구성 그림을 참 좋아하는데요. 그림이나 예술은 안될 것이 없고 새로운 것이면 더 좋아한다는 걸 느끼게 되는 그림입니다. 한가운데에 버드나무가 획 하고 올라와서 새로운 방향성이 생긴 기분이 드네요. 그리고 새들이 날아가면서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그림입니다. 화원화가 양해 또한 새로운 그림과 마음을 갖고 싶은 진정한 예술가 화가였기 때문에 이런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예술이 처음에는 멸시당하기도 마련인데 몇 년 몇 해가 지난 후에는 그 그림이 많은 사람에게 환영받고 위로가 되어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또한 입시와 똑같은 틀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것을 표현하고 싶으면서도 오랫동안 저에게 들어와 있는 고정관념이 쉽게 바뀌진 않네요. 화원화가 양해는 이미 본인이 가지고 있는 지위와 형태들을 벗어버리더라고 새로운 형태로 그리고 싶은 것을 표현했다는 것에 대해 큰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어요.

 

승려화가 목계 ( 1225~1265) 

이미 알고있던 꽃그림 새 그림 과일그림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승려화가였던 목계는 아주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지금 보면 이게 왜 새롭지 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당시에 쓰던 동양화 화조화 기법과는 완전히 다르게 먹의 농담으로만 표현하였기에 승려화가 목계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결국 진짜 예술가는 <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림과 글로 다른 몸짓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니까요. 저도 제가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계속 생각해 보면서도 화원화가 승려화가들처럼 기본기가 확실히 있는 기법이 있는 사람부터 되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승려화가 목계의 < 감 여섯 개> 그림을 보면 붓으로 한두 번의 터치로 감 하나가 뚝딱 완성된 것을 보게 되는데요. 수묵의 먹의 농담을 다르게 하니 정말 새로운 그림을 그려낸 감들이 되었네요. 당시에 다른 화가들이 양해, 목계 그림을 보았을 때 어떤 반응들을 보였을지 참 궁금하네요.

 

 

화조화의 끝과 새로운 시작

원나라가 중국땅을 다스리는 동안 화조화는 희미해지고 맙니다. 이수에는 명나라가 들어오면서 화원이 다시금 그림을 이거나갔지만, 화조화는 좀처럼 되살아나지 못했습니다.하지만 화원화가 양해, 승려화가 목계의 그림 스타일은 이어지고 있었는데요. 역시 새로운 스타일은 이어나가려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는 법인가봐요. 

 

 

문인화 대가 심주 ( 1427~1509) 

심주라는 문인화긔 대가는 번화한 도시였던 쑤저우에서 살았습니다. 과거도 보지않았고 다른사람의 천거를 받아서 벼슬할일도 생겼지만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글을 짓고 그림을 그리면서 일생을 살았는데요. 시문 글씨로도 유명했지만 특히나 그림에 엄청난 재주가 있었다고합니다. 요즘으로 생각하면 수능도 보지않고, 특례로 높은 자리에서 예술쪽으로 한 자리 차지할수도 있었는데요. 아마도 문화부장관 같은 단어가 생각나네요. 하지만 이 모든것을 마다하고 문인화 대가 심주 라는 예술가는 진짜 예술가로써 삶을 살아갑니다. 유파들도 많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유파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같은 화풍이 있는 화가그룹을 칭하는 단어 유파.

주로 학계나 예술계에서, 생각이나 방법 경향이 비슷한 사람이 모여서 이룬 무리.

심주, 문징명, 당인 등은 서로를 잘 알고 스승,제자,친구 사이로 지내면서 이들을 따르는 화가들까지 합쳐져서 유파를 이뤘답니다. 옛 오나라 지방인 쑤저우에서 활동하여서 오파 라고 불렀답니다.

 

쑤저우 

중국의 지역. 마르코폴로가 “동양의 베니스”라 극찬한 운하 도시이자 중국 고전정원의 도시

 

오파

중국 명나라 때, 중국 회화의 주류를 이루었던 화파. 옛 오나라 지방인 쑤저우(蘇州)에서 활동하였던 남종 문인화 계열의 작가들을 이른다.

 

되살아난 화조화 

심주를 통해 되살아난 화조화는 자연에서 마주산 동식물을 묘사하는 한 장르가 되었습니다. 일상에서 쉽게 볼수있는 꽃,물고기, 게, 포도,석류,새우, 온갖 가축이 그림의 세계에서 주제로 표현됩니다. 그러고보니 동양화그림 수묵화그림에서 석류,게,새우,포도를 자주 볼 수 있었던 것도 당시에 쉽게 접할수있는 소재들이였군요. 심주를 통해서 되살아난 화조화는 단순히 그림의 대상이 아니라 화가의 마음을 투영해서 그리기 시작합니다. 단순히 묘사만 하는 그림이 아니라 동물 식물들로 화가가 표현하고 싶은 마음들을 드러내기 시작한거죠. 계급때문에 만나지 못한 여인이나, 자신의 신분때문에 더 올라가지 못한 한을 그림으로 표현합니다. 거친 붓질로 마음의 황폐함을 나타내기도 하지요.

 

팔대산인

명나라 황족이였던 팔대산인 ( 1624~1703) 있습니다. 저도 대학때 자주 들었던 인물의 이름입니다. 젊은 시절에 청나라에 나라가 멸망해버리자 승려로 은둔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그림은 화가 나있고 울분에 차있고 뭔가 모를 불안함과 분노가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합니다.  그를 따르는 제자의 수가 100명 이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인생을 보면 참으로 울분과 불안함이 많은 인물이라고 느껴지는데요. 그래서인지 그만큼 거침없는 그림들이 지금도많이 회자되고 있는것같습니다. 팔대산인 이라는 이름은 그의 나이 60세쯤 부터 칭해졌다고 합니다.

 

동양화 화조화 팔대산인

 


오늘은 동양화의 채색 먹의 농담 화조화의 번성기와 쇠퇴기 그리고 새로운 그림을 그려낸 화가들의 기법까지 알아보았는데요. 결국 모든 예술은 그 예술학파들이 유행할때 인기있는 화가들이 있는것같습니다. 정석적으로 화원화가들이 인기있고 유명한 시기가 있고 나라가 멸망을 하거나 큰 사건이 있는 뒤에는 새로운 학파들이 각광받는 예술형태들이 이뤄지는것같습니다. 요즘 2023년 가장 인기있고 유망한 예술은 어떤것들이 있을까 생각해보건데 아직은 결론 못내리겠지만 sns 시대로써 누구나 어떤 사람이나 당대의 예술가는 탄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결국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뉴욕에서 거쳐를 두고 있어야 요즘의 각광받는 예술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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