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정보 / / 2023. 2. 11. 09:02

송나라 원나라 시대 동양화 그림 그린 이유 명나라 문인화가 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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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그림을 왜 그릴까요. 제 생각에는 자신이하고 싶은 말을 다양한 장르로 표현해 두는 것 같아요. 송나라 원나라 시대에는 그림을 왜 그렸을까요. 그때나 지금이나 남기고 싶어 하는 욕구가 컸던 것 같아요. 하지만 요즘엔 사진과 영상으로 많은 것들을 남기죠. 사진과 그림의 다른 점이라면 작가의 마음과 생각이 많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인데요. 송나라와 원나라시대에 동양화 그림을 그린이유와 문인화가 심주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볼게요.

 

  • 황제를 위한 그림 - 송나라 때의 그림은 황제를 위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 친구를 위한 그림 - 원나라 시대에는 친구들과 정으로 주고받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원나라 초기 화가 오진 작품 중  < 초가 정자에서 시를 짓다 >에서 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 이 그림은  1347년 겨울인 음력 10월에 친구 원택에게 주려고 그렸다"라고 쓰여있는데요. 원택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림 속 초가 정자에 모인 화가 중에서 오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그림을 함께 감상하면서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도 그림이 거래되는 물건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명나라 문인화가 심주 ( 1427~1509 )

명나라 중기의 문인화가로 평생 과거를 보지 않고 글과 그림을 벗 삼아서 지낸 인물입니다. 쑤저우를 중심으로 한 화파인 오파는 그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심주는 여러 장르의 그림을 그렸고, 여행을 다니며 실제 경치를 보고 산수화를 그렸습니다.

 

오진은 원래부터 유명한 화가는 아니었데요. 원나라 때 문인들은 사회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기에 기록을 남긴 사람이 드물었데요. 개인이 문집을 내려면 꽤 큰돈이 드는데 땅이 있으니 굶어 죽지는 않았지만 세금이 크기 때문에 넉넉하지도 못했죠. 오진도 비슷한 상황이었어요. 그림 구경을 위한 여행을 하고 싶었지만 중년이 넘어서 여행을 하였데요. 그 화가 오진의 그림을 발굴해 낸 게 바로 명나라 문인화가 심 주랍니다. 심주가 여행 다니고 있는 오진이라는 화가를 알게 된 거죠. 심주가 오진 그림을 칭송한 글이 종이를 덧대어 쓰여있습니다. 그림에 글을 더해가는 것은 문인들이 그림에 손을 댄 다음에 생긴 문화입니다.

 

화가 조맹부 ( 1254~1322)

조맹부는 화가 오진이 태어났을 때 이미 성장해 있던 청년이었습니다. 아는 것도 많고 재주도 많은 청년이었죠. 송나라 황실의 일원이었기에 나라를 잃은 슬픔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원나라 황제가 집권한뒤 얼마 안 되어서 송나라 유민들을 달래려고 송나라문인들을 특별 관료로 채용합니다. 조맹부도 특별 관료로 뽑혔지요. 당시에 고위관료는 몽골인, 색목인이었기에 송나라에 남겨진 백성들은 관료직은 생각도 못했을 때입니다. 조맹부는 나라를 잃은 슬픔 때문에 관료직을 거절했지만 그를 추천한 게 스승이어서 여러 가지 고민들을 하다가 관료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름만 올라간 힘없는 관료직이었죠. 

 

하지만 그의 글씨는 매우 훌륭하여서 요즘으로 치면 몇만 명원 팔로워를 가진 사람이었을 거예요. 워낙에 글씨가 멋져서 조맹부체, 송설체라는 이름까지 붙여졌다고 해요.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고 해요. 적들과 협력했다는 비판을 받았죠. 

 

  • 서체 - 서예에서 개인의 독특함이 살아있는 글씨체.

화가 조맹부 작산과 화주부산의 가을풍경
화가 조맹부 작산과 화주부산의 가을풍경

 

조맹부가 그린 작산과 화주부산의 가을풍경을 그림을 보십시오. 왼쪽에는 둥근 작산이 오른쪽에는 뾰족한 화부주산이 있지요.  이 두산은 산둥성 지난에 있는 산이래요. 주밀( 1232~1308)이라는 조맹부 친구가 요청해서 그린 그림이래요. 주밀 부모님의 고향에 가본 적이 없어서 그곳 경치를 그려달라고 한 거죠. 그림에 있는 많은 글들은 소장자와 감상자들이 남긴 글씨들입니다. 이 중에서 서예의 대가인 조맹부의 글씨는 오른쪽에서 네 번째 가장 잘 쓴 글씨입니다. 

 

그림을 보시면 멋진 기교를 부린 선과 구도는 별로 없습니다. 조맹부는 옛 시대의 소탈한 그림을 본받아서 그린 것입니다. 그는 산과 바위와 나무를 그리는 선이 서예 글씨의 선처럼 추상적인 예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나 봐요. 조맹부의 이 그림이 훗날 탄생한 문인화이 요소가 다 들어있는 것이지요.

 


오늘은 송나라 시대 때 왜 그림을 그려서 남겼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결국 어떠한 자료나 역사를 남기고 싶어 하는 마음과 마음의 사색을 표현하고 싶은 것에서 시작된 것이 동양화인 것 같습니다. 원나라 초기화가였던 오진의 그림을 알아봐 준 명나라 문인화가 심주 그리고  글씨를 아주 잘 썼던 조맹부까지 알아보았습니다. 조맹부 그림으로 이어진 문인화를 앞으로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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