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정보 / / 2023. 2. 9. 17:02

문인화 원나라화가 오진 송나라와문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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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역사가 바뀌고 대표하는 사람이 바뀌고 전쟁이 이어지면서 그림도 그만큼 새롭게 바뀌는 것 같습니다. 오늘 문인화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문인화도 그 경계가 매우 크고 대단하지요. 역사의 흐름에 따라서 화가들도 그저 사라진 직업으로 전락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문인화 송나라 원나라
문인화 송나라 원나라

 

 

사라져 버린 문인화

당나라말~ 오대십국을 거쳐서 송나라에 이르는 약 500년의 역사동안 산수화는 동양화의 새로운 장르로 올라섰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재 발견할 뿐만 아니라 정치에서 소외된 문인들의 힐링이자 피난처가 되었지요. 더더욱 멋져진 송나라 시절의 산수화에서는 예술의 최고봉 자리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 정점도 짧았는데요. 전쟁과 역사의 영향을 가장 빠르게 받는 게 예술 아닐까 싶습니다. 당나라는 외부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군사력을 키웠지만 이 때문에 망하게 됩니다. 그것을 본 송나라의 황제는 힘 대신에 글과 예술로 다스렸지만 결국엔 외부 적을 막지 못해 멸망에 이르렀죠.

 

 

송나라와 문인화 

송나라의 관료로 일했던 사대부들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어요. 논과 밭은 있으니 당장 끼니와 먹고살 것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회를 변화시킬 수도 없고 정치에 참여도 못했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글과 그림을 가르칩니다. 역시 교육을 하는 게 다시 나라도 살리고 사람도 살리는 일이군요. 이들은 과거도 볼 필요가 없었어요. 어차피 관료직에 나갈 수 없는 역사적인 환경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직접돈을 모아서 사립학교도 만들었고 검술까지 가르치는 등 교육에 열심을 다했습니다. 다행히 몽골인들은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해요. 송나라 사람들은 취미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시 짓기, 그림 그리기, 음악과 종교심까지 열심히 했죠. 원나라가 들어온 뒤 화원은 없어졌어요. 몽골인들은 실제적이지 않은 그림에 큰 관심이 없었다고 해요. 그리 사여 송나라 화원들도 생업을 찾기 위해서 흩어졌고요. 결국 끝까지 열심히 했던 문인들이 그림을 그렸고 대나무, 난, 산수화등을 자주 그렸다고 합니다.

 

 

원나라 화가 오진 (1280~1354)

<초가 정자에서 시를 짓다> 옛날 그림들은 제목이 꽤 긴 편 같아요. 오진이라는 화가는 송나라가 사라진 이듬해에 태어났데요. 원나라 시대에서 태어나고 죽은 온전히 원나라 사람이지요. <초가 정자에서 시를 짓다>  그림을 보면 뭔가 모를 편안함이 있습니다. 송나라 산수화는 치열한 짜임새가 있다면 이 그림은 평범하고 먹의 센 부분도 없고 편안한 풍경 그 자체 같아요. 그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 아니겠죠. 하지만 이런 그림 참 좋은 거 같아요. 오래 보고 싶은 그림이지요. 밑 영상 링크에서 참조해서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JYFrW4ez3o&ab_channel=u.f.ogarden 

 

숲 가운데에는 정라자 있어요. 이곳에는 시를 짓는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정자는 넓고 크고 여기서 거문고도 튕기고 요즘으로 치면 사유하면서 수다 부리는 시간을 보냈을 것 같아요. 정자 오른쪽에 보이는 큰 돌은 송나라 시절에 유행했는데요. 그때는 괴상하고 특이한 돌들을 세워두고 감상을 했다고 해요. 원나라 화가 오진은 원나라 시대에 태어나고 죽었지만 송나라시대의 것들이 남아있기에 그것을 잘 그려 넣었네요. 원나라 시대의 문인들의 삶이 좋아 보이실까요? 이때 문인들은 할 게 없었다고 합니다. 난세를 만나 숨어 살아야 하는 삶을 살았던 거죠. 이 그림을 그린 오진이라는 화가도 할 일이 없어도 무언가를 목표로 삼고 살아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겠죠. 

 


 

우리가 삶을 살때 바쁠 때도 있고 굉장히 한가할 때도 있지요. 무언가를 해야 할까 정하지 못할 때도 있어요. 그럴 때 화가 오진을 생각하면서 글과 그림을 그려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진 화가의 특이점은 화가의 작품에 자신의 이름과 그림의 제목까지 넣어도 이렇게 길게 넣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문인들에게는 본업이 시이고, 그림이 부수적인 것이기에 아마도 삽화 정도로 그림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시를 더 잘 표현하기 위해 그림이 필요한 거죠. 시와 그림 중에서 어떤 게 좀 더 주제가 되는지 살펴보면 그 사람이 화원화가 출신인지 문인출신인지도 알 수 있겠네요. 저는 아무래도 그림이 먼저이고 그림이 주가 된 멋진 그림을 남기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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